김반장이 리더로 있었던 아소토 유니언이 대중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윈디시티는 1집[Love Record]발표 후, 2집[Countryman's Vibration]에서 좀 더 장르에 충실해진 것 같다. 어떤가.
윈디시티는 다양하고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두고 출발했다. 특히 레게와 덥(dub)에 관심이 많았는데 멤버들의 음악적 관심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이게 되면서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좀 더 장르적이라고 느꼈다면 아마도 레게라는 루츠(roots)에 가깝게 가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런 면에서 두 번째 앨범 [Countryman's Vibration]은 아소토 유니언시절을 포함해서 윈디시티가 해왔던 과거와 미래, 딱 그 중심에 있는 앨범이라고 보면 이해에 도움을 될 것 같다.
그러나 60~70년대 흑인음악 사운드를 재현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건 그때에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윈디시티의 어떤 곡에선 그룹 ‘WAR’가 떠오르기도 했다. 윈디시티가 음악적 중심을 두었던 건 무엇인가.
흑인음악이냐 백인음악이냐 하는 것은 사실 허구다. 음악을 인종적인 기준으로 보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생각한다. 60~70년대는 우리가 영향받은 시대이며,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지금의 많은 음악가가 당시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 아소토 유니언이 소위 말하는 ‘흑인음악’을 재현하려고 했다면 윈디시티의 음악은 흑인음악이라고 불리는 것 외에 우리가 즐겨왔던 음악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일종의 성장이랄까.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우리가 체화(體化)한 스타일로 표현하고 싶은 열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어떤 ‘인종’의 음악을 떠나 그 이상의 많은 것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많은 음악인이 당시 음악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사운드를 재현해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왜일까.
시대가 바뀌었다. 옛것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그것을 재현하려고만 하는 것은 그다지 발전적이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비록 그때 당시의 소리에 영향을 받았지만 새로운 세대로서의 사운드를 원한다. 우리의 사운드 말이다. 그래서 밴드 안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계속 하고 있다. 다만 ‘션 리 앤 핑퐁 오케스트라’ 같은 밴드는 60~70년대 사운드를 거의 완벽하게 복원하고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사람들이 감동을 잊은 것 같다.
나이를 떠나서 이 시대를 플라스틱 세대라고 일축할 수도 있겠다. 나무를 대신해 간편하게 나온 플라스틱이 모든 것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런 플라스틱 예찬은 진정한 감동이라기보다 순간적 만족에 가깝다. 따라서 길게 이어지기 어렵고 깊을 수도 없다. 그 시절엔 물질은 부족했을지 몰라도 정신적인 모든 것이 충만했다. 플라스틱이 아닌 진짜 나무를 보고 감동할 수 있었으니까.
간편한 것만 쓰다 보니 오랫동안 뿌리를 거쳐 자라나는 나무의 본질을 잊어버리게 된 것이겠지. 우리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나무 그 자체로써 가치를 만들고 싶다. 이전 세대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유지함과 동시에 요즘의 것을 수용하면서 우리만의 방식을 갖는 것이 지금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방향성을 갖는 밴드가 돼야겠지.
매우 뻔하고 이상적이지만 현재를 대표할 또 다른 세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덥(Dub)에 대해 말해달라.
덥(dub)은 장르가 아니라 사운드다. 사운드 스타일이나 사운드 스케이프 정도라 할 수 있는데 일종의 음향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의 장르나 포맷이라기 보다 여러 가지 음향적인 사고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백 분의 일 정도는 설명되는 것 같다. 알 듯하면서도 잘 모르겠는 것이 바로 덥이다. 게다가 우리는 한국의 첫 번째 레게 덥 세대이기 때문에 함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장르나 스타일로 다가가서는 덥을 이해할 수 없다. 덥을 모르겠으면 덥을 많이 들으면 된다. 음악은 이미 음악으로써 표현되어 있고, 우린 평론가가 아니니까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처음 일렉트로니카도 한정된 장르였다. 지금은 그 이상의 개념이 되어 팝의 영역까지 포괄함으로써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같은 맥락이다. 음악은 들어보면 다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윈디시티 음반을 들어보면 다른 음반들과는 다른 사운드가 나온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하는 덥이다.
그렇다면, 덥은 윈디시티가 추구하는 본질과 거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나무 자체의 투박함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과 그것을 변형하는 방법 사이의 거리 말이다.
덥은 그러니까, 음. 리 페리(Lee Perry)의 블락아크(Black Ark) 스튜디오에서부터, 그리고 자메이카의 루츠 앤 컬쳐(ROOTS AND CULTURE)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흙에서부터 나온 사운드다. 그러나 덥의 의미는 그곳의 루츠 앤 컬쳐를 복습하는 것이 아닌 그것에 대한 충분한 영향과 감성을 느끼며 애정을 갖고, 다시 우리 식의 음향사고를 즐기는 것이다. 어차피 거대한 인류의 뿌리는 같고 자연의 큰 흐름 안에서 흙의 다양성도 존재하고 있는 것 아니겠나. 덥도 마찬가지다. 덥의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는' 덥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많은 덥 음악가들이 덥을 현재진행형의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해하든 못하든 이 음향사고는 계속 될 것이다.
어쨌거나 내 생각에 윈디시티는 그 본질적인 사운드를 잘 만들어 낸 것 같아 좋았다. 자부심이 있을 것 같은데.
자부심 당연히 있다. 얼마 전 자메이카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레게 형님들 앞에서 연주도 하고 우리 음악을 함께 듣기도 했다. 그들은 매우 흥겨워했다. 단순히 다른 동네 레게에 대한 일회적 호기심이 아닌 뮤지션간의 진지한 교류였다. 자메이카의 라스타 뮤지션들은 절대 빈말을 하지 않는 무거운 사람들이다. 레게는 다른 음악하고 다르다. 특히 루츠 앤 콜차는 영적인 음악이며 JAH와 자연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고 그것이 곧 루츠(roots)다. 삶의 방식을 말하는 거다.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보는 것이며 뿌리가 자라나는 흙을 느끼는 것이다. 전 세계 레게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경험 많고 현명한 어르신 음악가들의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의 방향성이 옳게 진행되고 있다는 확신과 어느 정도의 자부심을 느꼈다. 크게 보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귀중한 것이다.
윈티시티의 음악적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역할을 생각하고 음악을 하지는 않는다. 음악은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음악에 배어 나올 때 기쁨을 느낀다. 우리는 삶의 Livity(way of life 라스타 언어)로써 음악을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가사에 사랑 타령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사를 쓸 때 의도를 담진 않는다. 하지만, 어떤 바람이 들어가는 건 맞다. 그건 우리의 바람이다. 우리의 바람이 담긴 표현이지 ‘당신들도 이 가사를 듣고 뭔가 생각해봐’라는 식의 역할을 인식한 의도에서 비롯된 건 아니라는 얘기다. 가사나 칼럼에 소위 말하는 진보적인 메시지를 담는 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가 보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밴드의 한 단면일 뿐이니 너무 그 부분에만 집중하지 않길 바란다. 오각형이 있다면 그 중 한 면에 불과한 것이다. 메시지와 음악은 하나다. 그런데 음악으로써 표현되는 여러 가지 중에 어떤 일부분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사람들은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듣는 사람에게 유익한 음악이 되길 원한다.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넘어서 기쁨이나 슬픔 등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에 개입될 수 있는 유익함. 우리의 음악이 그런 감정들을 끌어올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어떤 사회적 역할은 필요 없다. 그건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다.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받아들여지는 대로 자연히 느껴가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중심은 늘 음악이고, 이 음악의 의미는 어떠한 역할도 초월한 좋은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냥 삶의 방식으로 음악을 하고 있으며 소박한 삶의 형태를 지향한다. 음악으로부터 얻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깨달음과 감동이 좋을 뿐이다. 동시에 이 멋진 것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 세대와 공감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제의하고 그들 앞에서 연주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진정으로 즐거운 것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윈디시티가 정치적인 밴드냐고 묻는다면 맞다고 하겠다. 하지만, 우리가 정치적 혹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신들은 완전히 잘 못 보고 있는 거라 답해주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역할을 의식한 어떤 메시지가 우선시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음악적 느낌과 정신이라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이런 말은 신선하지도 않을뿐더러 때론 며느리도 알 수 없는 의미를 지닌 말이기도 하니까.
다른 분야에 비해 음악은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쟁점화할 수 있는 역할의 비중이 작다. 물론, 꼭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황은 엔터테이너로서의 역할에만 편중되어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뮤직비즈니스에서 순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5% 혹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비즈니스다. 그러니 흥행위주의 음악들(사실 어떤 면에서는 음악이 아니라 산업이다.)이 판치는 것은 우리가 사는 바빌론시스템이 어떤 것 인지 증명하는 단면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뮤직비즈니스가 발달할수록 좋은 음악을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견해와 관점, 재미있는 생각이 아니라 흥행과 이윤이 우선시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들이 나오는 거겠지. 우리는 뮤직비즈니스의 한 부분에 속해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반하는 음악가로서의 면모도 강하다. 비즈니스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모두를 집어삼키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너무 편하다. 편하고, 쉽다. 어떤 사실에 대해 모르는 게 당당할 정도니까. 왜냐면 어렵고 복잡하고 귀찮은 사실로 여긴다.
그보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몰라서 안 하는 것도 있겠지만 알고도 언급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분위기가 이미 그렇게 조성되기도 한다. 나만 심각한 척, 아는 척이 되어버리기 일쑤니까.
그들은 잇백(it bag)은 알아도 <88만 원 세대>가 무엇인지는 모르는 것이다. 정작 자신들의 세대에 처한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윈디시티는 파티나 패션쇼 등의 행사장에서도 환영받는 걸 보면 잇백과 <88만 원 세대>를 동시에 거론할 수 있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 밴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당신들의 음악적 역할은 어떤 의미로든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우리의 역할로 한정되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영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문화의 개념을 생각할 때 문화라는 것은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 자체가 역사를 담은 무엇이다. 자신이 누리는 문화의 뿌리를 갖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일종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것일 뿐 이념과 음악이 분리되는 것을 원하진 않는다. 이것은 원래부터 하나다. 사람들이 무엇보다 우리의 음악에 감동 할 수 있길 원한다. 이런 영향으로 정신적 기분이나 이외의 것들이 환기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 그 에너지로 자신의 역할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길 바란다.
5.18 민주화 운동이나, 6월 항쟁으로 얻어낸 소중한 가치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너무나 위험한 안일(安逸)을 합리화하며 살고 있다. 17대 대선은 투표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심지어 특정 후보를 지지하던 일부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휩쓸려 투표하기도 했다.
스스로 느낀다면 거기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될 것이다. 지금의 우리 세대들이 신경을 쏟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성적과 취업뿐이다. 이 사회의 강압적인 프로그램에서 자란 이들의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메시지는 이미 많은 사람이 전하고 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세대 전체가 이런 것에 관심을 둘 수 있는 분위기와 흐름을 갖기에는 굉장한 시간이 걸린다.
곧 총선이다. 당연히 투표하겠지? (본 인터뷰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진행되었다.)
물론이다. 당연히 투표한다. 공약들을 좀 읽어봤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전반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결과에 기분이나 모든 것들이 좌지우지되던 적이 있다. 왜냐면 정치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봐도 문화를 포함한 모든 것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전되기는커녕 점점 더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만 받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노하기도 했고, 그런 이유로 혼란스러워하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더 넓어지길 바란다. 무엇보다 무게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때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진보는 무엇인가.
삶을 살면서 진정한 감동을 느끼는 것.
요즘 관심 있는 뉴스는.
당연히 티베트다. 중국은 지금 티베트의 분노에 떨고 있다. 미디어를 이용해서 그리고 그들의 바빌론 친구들인 미국과 유럽의 비호를 받으면서 갖은 비천하고 불쌍한 호도를 하고 있지만 제대로 안 될 것이다. 진실이란 그렇게 가려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정부와 그의 하수인들에게는 분명히 불과 천둥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젊은 우리가 그 불과 천둥의 일부분이 되길 진정으로 기도하고 희망한다.
내가 너무 다른 이야기만 했나. 미안하다.
하지만, 윈디시티의 음악이 멋진 건 이미 많이들 알고 있으니까.
괜찮다. Blessed love!
[NAZINE MAGAZINE l 유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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